선우씨는 멀리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기자(箕子)의 첫째 아들 기송이 2대
장혜왕(莊惠王)으로 즉위하면서 아우 기중을 우산국(于山國)에 봉(封)하여 조선의 '선(鮮)' 과
우산국의 '우(于)'를 합하여 성씨를 선우씨(鮮于氏)라고 했다고 한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41대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금마군(현 익산)에
마한을 세웠으며 마한 말기의 원왕에게 세형제가 있었는데 선우량은
용강 오석산으로 들어가 '황용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선우씨의 대를
이었고, 한명은 '행주 기씨(幸州奇氏)', 한명은 '청주
한씨(淸州韓氏)'가 되었다고 한다.
선우량의 10세손 선우병에 이르러 고구려에 나라를 빼앗기고 서민으로
살아 왔으나 문헌이 없어 고증을 하지 못하고 고려 문종때 중서주서(中書注書)를
지낸 선우정(鮮于靖)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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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선우석 : 고려 신종 때 죽주부윤을 지냈다.
선우석 : 선조에서는 숭인전전감. 선우협
: 일찍이 김태좌의 문하에서 시, 서, 역, 춘추 등을 배우고, 장현광, 김집을 찾아가 도를 물은 후 용악산에 들어가
"심성이기"의 묘리를 터덕한 학자로서, 인조와 효종대에 걸쳐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불취하고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세상에서는 그를
"관서부자"라 일컬었다. 선우업 : 대사간을 지냈다.
선우승, 선우헌 : 학자이다. 선우혁
: 한말에 독립운동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