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
성현의 아들이다.
연산군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며,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1514년 사가독서를 한
뒤 집의, 사간, 천문예습관을 역임하고, 1519년 직제학에 올랐다.
1522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다음해 형조참판으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성, 이조참판, 함경도 관찰사, 대사헌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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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년 권신 김안로(金安老)를 논척하다가
도리어 유배되었으나, 1537년 김안로가 사약을 받게 되자 풀려나와 한성부
우윤, 우참찬, 공조, 형조, 이조, 예조, 호조의 판서, 대제학, 우찬성
등을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죄찬성을 거쳐 우의정으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좌의정이 되었다.
문장에 뛰어났고,
글씨, 그림, 음률에도 뛰어나 삼절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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