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공 서해(嶰)의 아들이다.
이이(李珥),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서
1586년(선조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병조좌랑이 되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고, 행재소에서 병조정랑이 되었다.
그 후 암행어사로서 삼남을 훈찰하고 돌아와 제용감정에 특진되었으며
이어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뒤에 호조, 형조, 공조의 판서와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1613년(광해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으로 형조와 병조 판서를 지냈다.
학문에 능했고, 서화에도 뛰어났다. 대구의 구암서원에
제향,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집에 "약봉집(藥峯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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