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3년(숙종 39)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천거로 등용되어 첨지충추부사(中樞府僉知事)·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특히 산수화와 인물화에 뛰어난 화가로서 당대의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삼재(三齋)로
일컬어진다. 또한 시(詩)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어 그림과 함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그림으로는
암상포금도(巖上抱琴圖, 국립박물관, 죽하기거도(竹下箕踞圖), 봉창취우도(蓬窓驟雨圖,
이상
덕수궁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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