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자(正字)를 거쳐 집현전 부수찬이 되고, 정언(正言)을 지낸
뒤 이조, 형조, 예조의 정량을 역임하고 지안산군사로 부임, 치적을
쌍아 홍주목사가 되었다. 다시 상호군, 홍주목사(洪州牧使)·
지형조사(知刑曹事)에 올랐다. 동부승지가 되어 세조의
즉위에 공헌하여 좌익공신3등에 책록, 도승지에 승진했다. 1459년(세조
5) 창녕군(昌寧君)에 봉해지고, 이조참판으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호조참판을 거쳐, 1466년 우찬성 겸 호조판서가 되었다.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병마부총사로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이 되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다음 해 세조의 명을 받들어 노사신(盧思愼)과
함께 '북정록(北征錄)'을
편찬했고, 예종 즉위 후 남이(南怡),
강순(康純)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익대공신 3등이 되었으며,
1471년(성종
2) 다시 좌리공신 1등이 되었다. 1476년 부원군에 진봉,
다음 해 영충추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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