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순조 1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다음 해
응교(應敎)를 거쳐 1822년 대사헌에 특진되었다. 1826년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참의, 대사성을 지내고, 1829년 세손부(世孫傅)에 이어 예조참찬, 우부빈객
등을 지냈다. 1835년(현종 1) 이조판서에 승진했으며
1839년 기해박해를
일으켜 천주교를 탄압하고, 이 해 우의정에 올라 '척사윤음'을
찬진하여 계속 천주교를 박해했고, 죽을 때 까지 4차례[1841년(헌종 7)부터 1850년(철종 1)]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다.
문장, 글씨, 그림에 모두 능했고
1847년 "국조보감(國朝寶鑑)"의
찬술에 참여했다.
헌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고, 저서에 "운석유고(雲石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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