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고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870년
대사성, 이조참의를 역임, 이어 이조, 형조, 예조의 참판을 지내고 1875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그 추 우참찬, 한성부 판윤, 예조판서, 내의원
제조, 광주부 유수 등을 거쳐 1889년 공조판서·예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 뒤 경술국치에 일체 벼슬을 버리고 궁벽한 직산에
은거할 때 일본 정무가 은사금과 남작의 작위를 주었으나 이를 거절,
일본 헌병대의 강요에도 굴하지 않았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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