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진경(鏡, 시호는 충순(忠順))으로
고려 태조 때 금자광록대부 시중 상서 대보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그런데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 문헌에는 시조가 진충귀(陳忠貴)라 하였고, 또
'여양진씨세보(驪陽陳氏世譜)'에 의하면 여양군 총후(寵厚:여양진씨의
시조)의 증손 택(澤)이 삼척군 의(懿)의 증조라 하여 마치 삼척진씨가
여양진씨에서 분적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1979년에 간행한
삼척진씨의 세보에 의하면 전후 계대가 맞지 않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근거로 삼척군 의가 시조 경의 16세손이고 또 그의 문집에
본관이 삼척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선 개국원종공신 진충귀의 녹권에
본관이 삼척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진경을 시조로, 본관을 삼척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척진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많은 인물을 냈는데 주로 무과 출신이어서
이 집안이 무신 집안의 인상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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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고려
진정국(廷國) : 시조
경의 아들로 고려조에 관밀직사를 지냈고 진해(海)
: 4세 수문전
제학, 진희(羲) :문충공(文忠公), 해의 아들로 금자광록대부에 올랐다.
진정호(停浩) : 판도판서 진인손(仁孫)
: 문하좌시중을 지냈다.
진의 : 문곡공(文谷公), 충렬왕조에 이부시랑을 지내고 삼척군에
봉해져서 이 집안의 고려조 인물중 제일로 꼽힌다.
진사문(斯文) :병부상서 진방준(方俊)
: 병부상서를 지냈다. 진번교 : 문하시랑 조선
진충귀(忠貴) :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태조 초에 상의중추사 의주병마사 의주목사 등을 지내고 조선 개국원종공신
녹권을 받았다. 진암수(巖壽) : 22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26세에는 진현과에 뽑혀 성종 때 청요직에 있었고 연산군 때 임천군수를
지냈다. 진극성(克誠) : 무과 출신으로 검모포 만호를 지내고
명종 때 위사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진명궤(明軌)
: 이조판서를
지냈다 진영암(永闇) : 성균관 진사로 학문이 뛰어났고 효행으로
정려가 명해졌다. 진성진(聖鎭) :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진행은(行殷) : 이조참판을 지냈다. 진형복(亨福)
: 영조조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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