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진씨 (豊基 秦氏) |
시조(始祖) : 진필명(秦弼明) |
시조 진필명(弼明)은 당나라 고종 때 병부시랑으로
660년(신라 무열왕 7) 대사마 대장군 소정방 대장 정명진 중랑장 이무(李茂) 등과 함께 당군을
이끌고 나당 연합군의 백제 공략에 참가했다가 백제를 멸한 뒤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태원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풍기진씨세보(豊基秦氏世譜)'에
의하면 시조가 기자릉을 배알하고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다고 하였으며,
또 태원은 지금의 충주의 동쪽이라 되어 있어 시조가 처음 정착한 곳은
평양이요, 봉지를 받은 곳은 충주인데 본관을 어떤 연유로 풍기(豊基)로 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른 문헌에서는... . 15세손
진질명(질명)이 고려 의종 때 문관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으로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기주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풍기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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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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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진현석(玄錫) : 고려 현종 때 우보궐, 덕종 때
중추직학사 지제고에 올라 낙랑군에 봉해졌으며, 정종 때 동로병마사
진양필(良弼) : 충렬왕 때 대장군 밀직부사 자의 밀직사사를 거쳐 동지밀직이
되고 충숙왕 때 지밀직사사
진재해(再奚) : 인물의 사생에 뛰어나 숙종 때
숙종의 전신을 그려 상을 받았다. 진동석(東奭)
: 의원으로서 정조 때 내의를 지내고 지중추부사 풍기진씨(豊基秦氏)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가
5명을 배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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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세계도(上系世系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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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成村) ] 제주도 일원 경북 영풍군 봉현면 노좌리 경남 의성군 청호동 경북 영풍군 봉현면
생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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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풍기(豊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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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훈 |
기 |
진 |
홍 |
동 |
용 |
재 |
현 |
준 |
주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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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
교 |
흠 |
우 |
근 |
영 |
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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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3,475가구, 11,046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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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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