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7년(명종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1552년 예문관 대교를 거쳐 정언·이조좌랑을 역임, 1556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 검상, 사인, 1559년 전한, 다음해 형조참의를 지내고,
의주목사로 나갔다가 1563년 공조참의, 동부승지를 역임, 다음해 첨지중추원사로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 이조참의가 되었다. 1566년
대사간, 호조참의, 다음해 병조참지, 부제학을 지낸 뒤 치사했다.
당시 김안로(金安老)의 횡포가 심하자 이들 일당을 탄핵했고, 19세 때는 형우가
역시 김안로에게 몰려 죽자, 혼자 궁궐 밖에 엎드려서 그 신원을 상소함으로써
기개가 높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