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李滉)의 문인 1558년(명종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언·헌납 등을 거쳐 1568년(선조 1) 교리로 춘추관 기주관을 겸직했으며,
1581년 대사헌을 거쳐 이조참판으로 진하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589년 우찬성으로 사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에 호종했고,
1594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몸소 전장에 나가려 했으나 왕아
그의 연로함을 들어 만류했다. 그 후 관직을 사퇴했다가
1600년
좌의정으로 등용되어 1603년 영중추부사가 되고,
다음해 호종공신 3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봉조하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하여 경서를
비롯, 천문·지리·병법 등에까지도 정통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왕을 의주로 호종하여 호종공신 3등으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지고 봉조하에
이르렀다. 그는 나중에 곽재우(郭再祐)·이순신(李舜臣)·김덕령(金德齡) 등 명장을 발탁하여
국난을 구하게 했고, 특히 이순신(李舜臣)이 누명을 쓰고 옥살이할 때 이를 구출한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예천의 도정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 약포집(藥圃集), 용만견문록(龍灣見聞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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