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 1637년 제릉참봉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장원, 이듬 해 부수찬을 거쳐 세자시강원 사서로서
소현세자를 심양으로 호종했다. 돌아와서 교리·이조정랑·응교·집의·사인
등을 거쳐 원주목사로서 선정을 베풀었으며 1650년 진주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서 세폐를 삭감시키고, 병조참의·승지·대사간을 거쳐 전라도
등 여러 곳의 관찰사를 역임했다. 1666년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우의정에 올랐다가 1669년 예조판서에 전직하여 평안도
별시를 관장, 1674년 좌의정이 된 뒤 병으로 한직인 판중추부사로 전임했다.
2차 예송이 일어나 송시열의 추죄가 논의되자 이를
반대했다. 1679년 영중추부사에 승진, 이듬해 다시 좌의정을 지내고,
1685년 병으로 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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