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성종2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정자·지평·정언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교리로 갑자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복직된 후 청송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발전계통을 체계화한다면,
정몽주(鄭夢周)가 창시했고, 길재(吉再),
김숙자(金淑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 정붕(鄭鵬),
박영(朴英) 등으로 이어져 왔다.
선산의 금오서원, 개령의 덕림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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