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미관말직을 지내다가 사임, 송도와
고향에서 수도하다가 오래된 절에서 산신을 만나 비결을 얻은 도술가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백성을 현혹시켰다는 죄로 관의 추적을 받게
되자 그 화가 두려운 친척들은 그가 남양인이 아니라고 혈통을 숨기는
한편, 그의 부모와 형의 비석까지 땅에 묻어 현재는 좌대석만 남아 있고
비문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전우치는 신천옥에서 옥사했는데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무덤을 파보니 빈 관만 있었다 한다. 기담으로는
식사중에 입에 문 밥알을 내뿜자 그것이 각각 휜나비로 변하여 날아갔다
하며, 새끼 수백 발을 하늘에 던지고 동자를 시켜 하늘에 올라가 천도를
따오게 했다 한다. 또한 부여의 백강 나롯배 안에서 남의 집에 선사
가는 참외 1개를 달라 하여 거절당하자 참외씨를 심어 그 자리에서 참외를
따먹고 작별한 후에 보니 지게에 있던 참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고향인 석성현(현 논산군 성동면)에는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1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받고 있는데, 전우치가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그의 기행은 작자미상의 '전우치전(田禹治傳)'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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