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23년 유생으로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
2등으로 연양군(延陽君)에 봉해졌다.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협수사(協守使)가 되어 군사를 모집, 그 공으로 수원방어사가 되었다.
그 후 양주목사를 거쳐 1631년 강화부 유수에 승진했고,
1636년 병조참판으로
남한산성 수어사·호위대장 ·특진관을 겸직했다.
이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서성장(西城將)으로 성을 수비했고, 다음해 병조판서에 특진됐으나
1638년 척화신이라 하여 아들 이유(李愉)를 심양(瀋陽)에 볼모로 보내게 되자 대신
서자를 보냈 다가 2년 후 탄로되어 파직되고, 1642년 진하사로 청(淸)나라에
다녀온 뒤 1645년 공조판서, 이어 병조판서,
1649년 이조판서를 거쳐
1650년(효종 1) 우의정에 올랐다. 이해 진주사, 이듬해 좌의정으로
사은사, 1653년 다시 사은사로 각각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연양부원군에
진봉되었고, 1655년 영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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