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9년(숙종 5) 학행으로 천거되어 지평, 장령,
공조참의, 예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 찬선 등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승진했다. 이이(李珥)의 학설을 반대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거두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의 어머니 장씨 부인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딸로 태어나
10여세 때부터 시서에 능통한 재원이었으나 출가한 뒤에는 학문은 부녀의
소임이 아니라고 믿어 내조와 자녀 교육에만 힘써 세칭 7현자를 길러냈다.
저서로는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
"장부인실기(張婦人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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