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년(연산 7) 문과에 급제, 1504년 지평이 되고, 1506년 사복시(司僕寺) 첨정(僉正)으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하여 정국(靖國)공신으로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지고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도승지에 특진되었다. 이듬해에는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잘 처결하여 다시 정난(定難)공신에 책록된 뒤 병조판서 ·좌찬성 ·호조판서 ·대사헌을 지내고 좌참찬(左參贊)이 되었으나, 사림파(士林派) 출신 언관(言官)들의 탄핵으로 물러났다. 1519년(중종 14) 훈구파(勳舊派)의 일원으로 심정(沈貞) ·남곤(南袞) 등과 함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의 신진(新進) 세력을 실각시키고 그 후 좌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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