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 홍형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504년(연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진도(珍島)에 유배,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석방,
1507년 증광문과에
급제, 저작(著作)·지평 등을 지냈다. 사가독서한 후 우부승지가 되었고,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투옥,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변호로 풀려나왔다.
1526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여섯 번 대사헌(大司憲)을 역임, 이어 이조·호조·형조
판서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가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파직되었다.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실각하자
다시 호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
1544년
영의정이 되었다. 인종이 즉위하자 류관(柳灌)과 함께 원상이 되어
시정을 처결하고, 영중추부사가 되었고, 1545년(명종 즉위) 위사공신2등으로
익성부원군에 봉해졌고, 1548년(명종 3) 다시 좌의정·영의정에 올라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인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으로 "묵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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