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조선 순조 11)에 평안도 용강 출신인 홍경래(洪景來.
1780∼1812)가 일으킨 반란. 홍경래는 지혜가 있고 문재에 뛰어나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지방 차별의 폐습으로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자 부패한
국정에 불만을 품고, 1811년(순조 11)에 평안북도 가산의 우군칙 등과
더불어 서북 지방에 대한 정부의 차별을 구실로 난을 일으켜 스스로
평서 대원수라 일컬었다. 4개월 동안 계속된 홍경래의 난으로 한때 청천강
이북의 땅이 그의 손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그 이듬해 4월 정주에서
관군에게 패하여 죽었다. 이 난은 하층 양반과 중소 상인 및 유랑 농민이
합세하여 부패한 조정에 항거한 사건으로, 그 뒤 여러 곳에서 일어난
민란에 영향을 끼쳤다. 홍경래의 난은 비록 실패했지만, 19세기 초에
우리 나라 서북 지방을 뒤흔들어 놓은 대규모의 농민 항거 운동이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