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추부사 권상(常)의 아들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응시하여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 ·춘추관(春秋館)의 벼슬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장령(掌令)으로 서울의 사수(死守)를 주장하였다.
1597년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로 있을 때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고급사(告急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가서 원병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귀국 후 호조참의에 오르고,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다. 1607년 예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광해군 때에는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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