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부사 권적(勣)의 아들이며. 권율(慄)의 아버지이다.
1528년(중종 23)에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관(史官)이 되어 사초(史草)를 쓸 때 직필(直筆)하여 영의정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한때 좌천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다시 사관에 복직되었으며,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544년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으로 경상도 경차관(敬差官)이 되었다.
경기도어사 ·우승지를 거쳐 1552년(명종 7) 도승지가 되고, 다음 해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에 경상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형조 ·병조 판서를 거쳐 1561년 우찬성에 임명되고, 1565년 윤원형(尹元衡)이 죽자 이듬해 우의정이 되었다. 이 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567년 선조 즉위년에 좌의정이 되었으며, 1571년 영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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