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9년(성종 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하고,
예안현감(禮安縣監)으로 선정을 베풀어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으며,
1495년(연산군
1) 수찬을 거쳐, 다음해 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498년(연산군 4) 전한(典翰)이 되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파직되었고, 다시 부호군(副護軍)에 등용되어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좌천되었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켰고, 이어 우의정, 영의정 겸 세자사(世子師)를 지냈다.
저서로
신용개(申用漑)·남곤(南袞) 등과 함께 지은 '속동문선(續東文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