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과 사귀었다.
집의(執義) 김맹(孟)의 아들이다.
1486년(성종 7) 생원이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式年試)에 갑과로 급제, 예문관에 등용된 후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491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뒤에 이조정랑(吏曹正郎)이 되었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관리들(전라도 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직필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었고,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찰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일찍이 그에게
원한을 샀던 비행자들을 통하여 연산군에게 알려져 사형되었으며, 다른
많은 사류(士類)들도 화를 입었다.
중종반정(1506년) 후 신원(伸寃)되고,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목천의 도동서원, 청도의 자계서원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 탁영집(濯纓集)이 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속동문선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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