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국(金正國)의 형, 김굉필(金宏弼)의
문인.
1501년 생원시, 진사시에 합격, 1503년에 별시문과에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어 박사, 부수찬, 부교리등을 역임했다.
150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지평, 장령, 예조 참의, 대사간,
공조 판서 등을 지내고, 1517년(중종 12)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각 향교에
'소학(小學)'을 권하고, 농서, 잠서의 언해와 '벽온방',
'창진방' 등을 간인하여 보급하였다. 1537년에 다시
기용되어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좌참찬, 대제학, 찬성, 판중추부사,
세자이사등을 역임했다. 1541년 병조 판서로서 천문, 역볍,
병볍에 관한 서적의 구입을 상소하고 물 이끼와 닥을 화합하여 태지를
만들어서 왕에게 바치고 이를 권장했다.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지치주의를
주장했으나 급격한 개혁에는 반대했다. 성리학 뿐만 아니라
천문, 주역, 농사, 국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인종의
묘정에 배향, 여주의 기천서원, 이천의 설봉서원, 의성의 빙계서원 등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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