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최씨 (開城 崔氏) |
시조(始祖) : 최우달(崔佑達) |
시조 최우달(佑達)은 황주(黃州)의 토산현(土山縣, 현 평북
중화군) 사람으로 신라의 대상(大相)이었다. 그의 아들
최응이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여러대에 걸쳐
개성에서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개성(開城)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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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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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최응(凝)
: 고려 태조의 총해를 받았다.
최천보 : 조선에서 한성부윤을 역임했다 최명창(命昌)
: 예조참판을 거쳐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최입(岦) :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외직을 역임한 뒤 1577년(선조 10)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일찍기 이이의 문하에서 글을 읽어 문장과 시에 능하여 여러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격찬을
받았으며 그의 글과 차천로의 시, 한호의 글씨를 송도삼절이라 일컬었다. 최유,
최철손 : 조선 때 지사를 역임하였다. 최이
: 사과를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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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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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함북 학성군 학서면 업억동 함북 길주군 역사면
역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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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경기
개성(開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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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두(斗) |
용(容) |
곤(坤) |
종(鍾) |
태(泰) |
동(東) |
희(熙) |
규(奎) |
석(錫) |
락(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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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3,306명. (1985년) 1,487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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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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