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최우달의 아들. 황주의 토산 출신으로 처음에 그 어머니가 애기를 가졌을 때 그집에 누른 오이덩굴리 있었는데 갑자기 참외가 맺었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궁예에게
알렸다. 궁예가 점을 쳐보게 하니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라에 이롭지 못할 것이니
아예 키우지 못하게 하십시요" 하였다. 그 부모가 숨겨서 길렀는데 장성하면서
오경에 통달하고 글짓기를 잘하여 궁예(弓裔) 밑에서 한림랑이 되어 매우 존경을 받았다.
915년(신라 신덕왕 4) 궁예가 왕건(王建, 고려 태조)을 불러들여 모반의
누명을 씌울 때 왕건이 변명하자 일부러 붓을 떨어뜨리고 줍고자 뜰에 내려와서 왕건에게 굽히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귀뜸해 주어 화를 면하게
하였다. 이때 부터 왕건과 가까워져 고려가 개국하여 왕건이 즉위하자 원봉성사를 거쳐 광평낭중으로 승진하고 이어 내봉경을 역임하며 태조의
총애를 받았다. 932년(태조 15) 그가 35세로 죽으니 태조가 매우 슬퍼하며 원보로 추증했다가 태자태부[대광태자태부]로
추증했다.
1027년(현종 18) 태조 묘정에 배향되고, 1033년(덕종 2) 사도(司徒)에 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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