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박의중(宜中, 자는 자허, 시호는 정제)은 신라 경명왕(景明王,
박혁거세의
29세손)의 큰아들인 박언침(밀성대군)의 17세손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과 직제학(直提學)을
지내고 1388년(고려 우왕 14) 명나라에 들어가 철령위(鐵嶺衛)의 철폐를 교섭하고
돌아와 창왕(昌王) 때 공신이 되었다. 후에 예문관 제학겸 대사성을 지내고
1392년(조선 태조 원년) 정도전 등과 함께 "고려사"를 수선하고
검교참찬 의정부사가 되었다. 그의 아들 박연이 공민왕
때
정사공신으로 문의군(文義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본관(本貫)을 나누어서
문의(文義)를 본관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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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박연(衍) : 정몽주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을 거쳐 대제학에 이르렸다.
박행(行) : 고려 때 우상(右相)을 지냈다.
박녕(寧) : 박행의 아들, 고려 말에 공조판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절의를 지켜 두문동 72현(杜門洞七二賢)으로 후세의 칭송을 받았다.
박문덕(文德) : 박연의 5세손, 학문이 뛰어나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홍문관제학에 이르렀다.
박인정(仁定) :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으나 조령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박란(蘭) : 의병을 모아 수 많은 공로를 세어 1604년 선무공신에 책록되었다.
박문표(文杓) : 한말에 의사(義士)
박운석, 박전석 : 독립운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