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년(중종 2)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10년(중종
5) 진사로 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을 역임,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우승지가 되었다. 이때 김안로(金安老)가 전횡을 일삼자
자청하여 남원부사로 나갔고, 뒤에 도승지로 있다가 허항(許沆) 등의
모함으로 공주목사로 좌천, 이어 파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병조,
이조참의, 개성유수, 한성좌우윤을 지냈다. 인종 때에는 한성부좌윤 겸
동지춘추관사가 "중종실록(中宗實錄)"을 편찬을
감수, 만년에 전주부윤을 역임했다.
시문에 뛰어났고, 성품이 강직하여
권귀의 근질긴 모함을 받았다. 청백리에 녹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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