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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name.info :+: 박순 (朴淳)

 

 박순 (朴淳)

 


  조선 상호군.
  시호는 충민(忠愍).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 때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서 종군,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의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으며,
  1392년 조성이 개국되자 상장군이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여러 왕자들을 죽이고 등극한 태종을 미워하여 함흥에 머물게 되자 수차 사자를 파견, 귀환을 요청했으나 모조리 사자들을 죽이므로 태조와 친분이 두터운 그는 사신되기를 자원하여
  1402년(태종 2) 함흥에 내려가서, 돌아가겠다는 태조의 확약을 받고 나서 귀로에 올랐다.
  한편 그를 쫓아가 죽이자는 측근자의 주장에 태조는 그가 용흥강을 건넜을 무렵을 어림하여서 신하들의 청을 허락하면서 강을 건너갔으면 쫓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중에 급병으로 지체하다 간신히 배를 탔으나 결국 뒤쫓아온 사람들에게 잡혀 살해되고 말았다.
  태종은 그의 공을 녹하고 관직과 토지를 내리는 한편 자손을 등용할 것을 명했고, 부음을 듣고 자결한 부인 임씨에게 모지를 내렸으며, 그의 고향에 충신 열녀의 두 정문을 세우게 했다.
  송시열(宋時烈), 민정중(閔鼎重), 홍석주(洪奭周), 김재찬(金載瓚) 등이 지은 묘표 시작 상량문 제문 등 그를 추모한 많은 글이 전한다.

  판승추부사에 추증,
  용강서원에 제향되었다.

 박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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