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때 문장과 절행이 탁월하여 13세 때 조야의
천망을 받아 특별히 시중 판사에 제수되었다. 1356년(공민왕 5)
왕명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순제의 특대를 받았고, 문장으로 중국 조야에
명성을 떨쳤다. 3년 후 귀국할 때 그에게 80노모가 있음을 안 순제가
황금과 백금 백 냥, 적벽(赤壁) 3천 쌍을 하사하며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라]고 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대거 침입하여
개경(開京)이 함락되어 왕이 남행할 때 호종하였다. 난이 끝난 후
벽상공신 2등으로 충원백(忠原伯)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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