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李滉)의 문인.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
1565년(명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다. 1567년 주서를 거쳐
이해 명종이
죽자 수찬으로 지제교 검토관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여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571년(선조 4) 지평을 거쳐
1573년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듬해 장령 교리 검평을 역임, 사인
동래부사 광주목사를 지낸 뒤 1580년 좌승지,
1582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참판을 지내고, 1585년 경상도 관찰사에 올랐으며,
이어 형조와 호조의 판서를 지낸 뒤 1589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3등이 되고 칠계군(漆溪君)에
봉해졌으며, 비변사 유사당상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함경도 관찰사로 광해군을 호종,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고
왜군에 대한 방어 계획을 세우던 중 객사했다.
시문에 능했다.
함흥의 창의사(彰義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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