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판(參判) 유선보(善寶)의 아들이다.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했고 문장(文章)에 뛰어났으며, 학문(學問)에 열중하여 후진 양성에 진력했다.
1574년(선조 7) 여름, 나라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제단(祭壇)을 쌓고 살신기우(殺身祇雨)할 결심으로 높이 쌓아 올린 장작더미 위에
정좌(正坐)하고 기원하면서 나무에 불을 지르니 갑자기 큰 비가 내렸다. 왕(王)이 이를 가상히 여겨
천방(天放)이라는 호(號)를 하사했다.
특히 유호인(好仁)은 일생을 낙천적으로 살았는데, 자기가 사는 동명(洞名)을
자하동(紫霞洞), 자기 거처를 정정당(定靜堂), 바깥 사랑채를 불우당(不憂堂), 집앞에 있는 못을
완묘호학지심지(玩妙好學之心池)라 이름하고 풍류와 환락으로 일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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