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성종 5)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498년(연산 4) 도승지 겸 직제학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사퇴했다가
1478년(성종 9) 부제학, 형조참판 등으로 여러 번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00년 대사간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유배된 자들의
이배 문제로 노사신(盧思愼),
류자광(柳子光) 등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가 1504년(연산 10) 복관되어
한성부 우윤에 올랐다.
대구의 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대봉집(大峰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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