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 송복흥의 아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주서 경성판관을 거쳐 1584년 종계변무사의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 후 호조 예조 공조의 정랑, 사재감 군자감의정을
역임했다. 1592년(선조 25) 동래부사로 재직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적군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성안의 군사를 이끌고 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될
무렵에 조복을 갈아입고 단좌한 채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출절에
탄복한 적장은 그의 시체를 동문 밖에 장사하고 시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조판서 찬성에 추증, 동래의 낙안서원, 개성의 숭절서원, 청주의 신항서원,
고부의 정충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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