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일본 메이지 대학을 졸업, 귀국하여 김성수(金性洙)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중앙중학교 교장에 취임,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3
1운동 때는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을 지도하고 약 1년간
옥고를 겪었다. 1921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고 만국기독교청년회
주최 태평양회의에 참석했다가 이듬해 다시 투옥되었다. 출옥 후에도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해방이 되자 한국민주당을 조직, 수석총무로
선출되어 민족진영의 단결과 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했다. 1945년
12월 28일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괴한의 저격을 받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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