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원경 신단의 아들이다.
1910년 한성외국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일본에 가서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재학중
학우회를 조직, 총무, 평의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학생운동을 벌이고,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을 발간했다. 1917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내무차장, 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내무총장, 법무총장, 문교부장, 외교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지도했다. 해방후 귀국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이 되어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1946년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당선, 이듬해 입법의원의장이
되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부의장이 되었다가
그 해
8월 의장이 되고,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 다시 의장이 되고, 이어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동안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맡아 야당을 영도했으며, 1956년 민주당 후보로 제3대 대통령에 출마하여
한강 유세를 마치고 호남지방 유세차 가돈 도중 열차 안에서 급사하여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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