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92년 대교·검열을 지내고 1797년 '향례합편(鄕禮合編)'을 편집했다.
순조 때 의주부윤, 대사성, 부제학, 강화부 유수, 형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1838년(헌종 4) 상호군, 이조·병조의 판서, 좌우참찬·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실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백가서에도 통달하여 문명이
높았다. 1834년 호남순찰사로 노령남북을 돌아보던 중 기근을 겪고
있는 백성들의 궁핍을 목격하고 나서, 일본에 가는 통신사 편에 부탁하여
고구마 종자를 구입, 각고을에 나뉘 주어 재배르 장려하고, '종저보(種藷譜)'를
저술하여 그 재배법을 널리 알렸다.
농정에 대한 경론과 상소문을
써서 영농법의 개혁을 여러차례 역설했고 만년에는 친히 농사를 지으며
농업에 대한 백과사서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라는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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