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류양(壤)의 아들이다.
일찍이
점필재(佔畢齋)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487년(성종 18) 진사를 거쳐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 전적(典籍)에 등용되었다.
1491년 북정도원수(北征都元帥) 허종(許琮)의 막하로 야인(野人) 정벌에 종군하여 전공을 세웠다.
연산군 때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올라,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공을 세우고 정국공신 1등(定難功臣
一等)으로 청천부원군(菁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어서 우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직,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려 그 공로로 정난공신 1등(定難功臣
一等)에 책록되었다. 1509년 좌의정에 오르고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직접 경상도도원수로 출정, 난을 평정했다.
1512년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러 재직중에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