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선조 15)진사가 되고, 1589년 증광문과에 장원, 1593년 문학이
되었다. 선조 말년에 황해도 관찰사 등을 거쳐 좌승지, 도승지를
역임했다. 1612년(광해 4) 예조참판이 되고, 이어 이조참판에 전임했다.
폐모론 때 이이첨(李爾瞻)과 대립, 가담하지 않았다.
류응시(柳應時)의 무고로
처형되었으나 정조 때 신원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세 번이나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을 떨쳤으며 설화문학의 대가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흥의 운곡사, 고산의 삼현영당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어우야담(於于野談), 어우집(於于集)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