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의 이름 황(晃)을 피하여 자환으로 개명하였다. 부윤 류규(規)의 아들이다.
1451년(문종
1) 능직(陵直)으로서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 이듬해 승정원주서,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世祖) 등이 주도한 계유정변에
참가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56년(세조 2) 종부시윤(宗簿寺尹)을 역임, 1459년에는 승정원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이후 우부승지·우승지·좌승지·도승지 등을 두루 역임한 뒤
1462년 이조참판에 승진되면서 오성군(筽城君)에 책봉, 중추원부사를 거쳐
10월에는 호조참판, 같은해 12월부터 다음해 5월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463년 4월 귀국하기에 앞서
대사헌이 되고, 5월 남원에 거주하는 계모를 시병하기 위하여 사직하였다. 1466년 전라도관찰사로 파견, 곧 소환되어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면서 오성군에 봉하여졌다. 성품이 공손, 관후하고 아량이 있어 상하의 인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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