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노씨 (密陽 魯氏) |
시조 : 노중연(魯仲連), 일세조 노형권(魯衡權) |
시조 노중연(仲連)은 주(周)나라 난왕(赧王) 사람으로 진시왕을
추출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의 손자 노계(啓)는 기자가 우리나라에 올때
신하로 따라와 우리나라에 살게되었다고 한다. 그의
후손인 노형권(衡權)이 고려 공민왕 때 공조판서(工曹判書)로서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밀산(밀양)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그를 1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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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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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노서(恕) :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노복(馥) : 군수를
역임하였다, 노요좌(堯佐) : 참의를 지냈다. 노의(誼)
: 밀직사를 지냈다. 노천보(天輔) : 판사 노겸(謙)
: 통훈대부 노찬(讚) : 동지중추부사 노봉동(鳳東)
: 군자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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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세계도(上系世系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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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관수리 황해도 봉산군 서종면 추진리 황해도
연백군 해룡면 광운리 황해도 재령군 일원 황해도
봉산군 토성면 나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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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경남
밀양(密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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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기(箕) |
희(熙) |
배(培) |
진(鎭) |
윤(潤) |
업(業) |
병(炳) |
주(周) |
석(錫) |
연(演)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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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榮) |
엽(燁) |
재(在) |
현(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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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1,925명. (1985년) 1,268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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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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