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85년 별제에
천거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권율(權慄) 막하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남원에서 포로가 되어 일본에
잡혀 있다가 탈출하여 명나라로 들어가 무이서원에서 정주학을 공부햇다.
도학이 탁월함을 보고 해동부자라는 칭호를 받았고, 신황에게 주문되어
신황이 상충무절이라고 포상, 말을 내리고 차관을 명하여 호송귀국하니
선조가 불러 수원분사에 임명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거평사,
금산산, 학산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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