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부패한 군부를 숙청하려다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순종 1) 안창호(安昌浩)·이갑(李甲) 등과 신민회를
조직,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하였다.
국권피탈 후 대종교에 입교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중공동전선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할 것을 주창하였다.
1912년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桂太郞〕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가서 서일(徐一)·계화(桂和)
등과 항일독립운동을 결의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 군사부장에 취임하였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으로 봉직하고, 제
2 차세계대전 말에는 임시정부 군사특파원으로 시안〔西安〕에 파견되어
광복군 창설의 기초를 닦았다.
1945년 귀국하여 한국장교단장·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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