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송(宋)나라에서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신보(臣保)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원래 중국
절강(浙江, 중국 절강성의 북동으로 항주만으로 흐르는 강) 사람으로
증조부(曾祖父)인 응충(應沖)이 송(宋)나라에서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장작감의 종3품 으뜸 벼슬)을 지냈고 조부(祖父) 의(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아버지인 수거(秀거)는 원외랑(員外郞)을 지냈다. 신보는
송(宋)나라가 망(亡)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高麗)로 망명(亡命)하여
서산(瑞山)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며 종신토록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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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헌에서는... . 시조 정인경(仁卿, 호 看月齋, 시호 襄烈)은
원래 중국 절강 사람으로 고조 응충은 송나라에서 판정작감사를 지냈고,
증조 의(儀)는 상서좌복야, 조부 수거는 원외랑이었으며, 아버지 신보(臣保) 역시 송나라의
원외랑 벼슬에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망명, 서산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정인경은 충렬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했고, 1269년(원종10) 세자가 귀국하여 파사부에 이르렀을 때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을 옹립한 사실을 보고하여 세자로
하여금 원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2등공신에 오르고, 고향 부성현이 서주군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장군·친종장군·대장군 등을 지내고, 1290년(충렬왕16) 원나라가
동녕부를 폐하고 제성을 고려에 돌려줄 때 공을 세워 부지밀직사사에서
서북면 도지휘사·서경유수가 되었다. 그 후 판삼사사·도첨의
찬성사를 거쳐 중찬에 오르고 벽상삼한 삼중대광 추성정책 안사공신이
되었다. 성품이 부지런하고 정직하여 원나라 황제로부터
무덕장군·정동성 이문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본관은
조상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서산이고, 또 그곳에 세거했기 때문에 서산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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