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을
거쳐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익원종공신 2등이 되고, 사간을 거쳐
1460년 예조정랑으로 가례색도감낭청을 겸직하고, 이어 사인, 한성부윤,
공조참의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 그때 진주에 거주하던
소훈(내명부의 종5품) 윤씨의 모친 병환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는 죄로
한때 파직당했다. 1466년 함길도 절도사·변정원(장례원)의 판결사를
거쳐 이듬해 도지중추부사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판,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한 뒤 1489년 우참찬이 되었고,
이조와 호조의 판서, 세자시강원 빈객, 경상도순변사를 지낸 뒤, 1492년
우찬성에 오르고, 1494년(연산 즉위) 공조판서로 산릉도감 제조를
겸직, 이듬해 판중추부사, 1496년(연산 2) 우의정에 승진, 궤장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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