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때 전라도 안무사를 거쳐 1377년(우왕3)
순천도 병마사(順天道兵馬使)가 되어 순천·낙안(樂安)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고 전라도
순문사에 올랐다. 1381년 밀직으로서 해도 원수가 되고,
그 후 남원,
남해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뒤 지문하부사로서 해도 도원수(海道都元帥)·
양광, 전라, 경상, 강릉도 도지휘처치사(楊廣全羅慶尙江陵道都指揮處置使)가 되었으며,
1384년(우왕 10)
문하평리에 이르렀다. 1388년 요동정벌(遼東征伐) 때 안주도 도원수로 출전했다가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에 동조했고, 뒤에 위화도 회군의 공으로
2등 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다시 이초(彛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홍수로 인한 사면 때 풀려났으며, 그 뒤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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