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全禧)의 아들이다. 1517년(중종 12) 문과에 급제 성균관 사성을 지냈고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합천군수 장단부사 대동찰방 양주,해주목사(楊州,海州牧使)를 역임했다.
그가 장단부사로 재임시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연성위(延性尉)가 한 왕자(王子)와 전답(田畓)을 다툴 때
관찰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공정한 판결을 하여 김안로등의 미움을 사 파직되기도 했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은 그의 학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형 전헌(全獻)도 중종 17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권(成權)을 지냈다.
전한의 아들 죽헌공(竹軒公)
전여복(全汝復)은 효자로 학문과 인품이 특출하여 천거로 이조정랑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