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명종 19) 이희안(李希顔)을 위해 청계서원의
창건을 상소하였고, 1573년 조식(曺植)의 묘갈명을 썼다. 1574년(선조 7)
홍문관 제학 김우옹의 천거로 사포서 별 제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전공을 세웠다. 1593년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사근도 찰방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06년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그 후 충무위 부사과를 거쳐
춘추관 기사관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편찬에 참여했다.
서예와 성리학에 능통했다.
이조판서에 추증, 초계의 청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임계난리록(任癸亂離錄)'이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