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莊氏)의 본관

 

금천(과천)
(衿川)     

166가구,
476명. 

 

 장연
(長連)

54가구,
157명.

 

 

 

 이상
2본

 

 

 

 

 

 

 

 

 

 

 

 

 

 

 

 

기타

0가구,
1명. 

미상

1가구,
14명.

전체 2개의 본관과 221가구, 648명[187위]. (2000년 통계청 자료)

총 2개의 본관과 310명[193위]. (1985년)


 

 

 

장씨 (莊氏)

 

  장씨는 옛 문헌에 금천(衿川, 현 과천), 장연(長連) 두본이 있었다.
  장씨는 중국 초나라 장왕(莊王)의 후손으로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후손이기도 하다.
  장씨가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금천 장씨의 시조 장숙은 1423년(조선 세종 5) 문과에 급제하고 황해도의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냈다.
  그러나 금천 장씨는 1985년 인구조사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장연은 금천 장씨의 집성촌 이었으며, 아산 장씨는 '蔣'의 잘못된 기록으로 보인다.
  그밖에 장씨에 대한 기록으로는 '고려사'에 무신으로 1177년(고려 명종 7) 내시랑장 겸 병부시랑으로 있다가 거제 현감으로 좌천된뒤 유배도중 피살 당한 장보(莊甫)가 있으며, '국조방목'의 기록에는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한 장석황(莊錫滉)이 있으나 본관이 전주로 되어 있다.

 

 [ 분파(分派), 계파(系派) ]

 

 [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 집성촌(集姓村) ]

 

 [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 1930년도국세조사에서는 전국에 122가구가 있었는데, 그 중 6가구가 남한에 있을 뿐 대부분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었다.
  • 아산 277명, 장연 11명. (1985년)
  • 아산 476명, 장연 157명. (2000년 통계청)

 

 [ 관련 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