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이씨
(寧川 李氏) |
시조(始祖) : 이능간(李凌幹) |
시조 능간은 고려의 이름난 명신으로 충선왕이 토번으로 귀앙가자
역졸을 시켜 금(金)을 바침으로 왕과 호종신의 옹색을 면하게 했으며 원나라가 고려에서 성(省)을
두려하자 지밀직사사로서 원계에세 주청하여 이를 중지시켜 토좌당이라는 사림의 액호를 받고,
충혜왕 때 조적의 난이 일어나자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왕을 호종하여 1등공신에 책록되고, 영천부원군(영천은
남원의 고호)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을 영천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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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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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이명 : 능간의 아들, 병조판서를 지냈다. 이상휴
: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두문동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이분 : 상휴의 아들,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관직에 나가지 않고 현금을 즐겼다. 이정상
: 공조참의 이섬 : 이정상의 아들,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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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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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전북 남원군 주천면 용담리 전북 남원군 이백면 초촌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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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영천(寧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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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규(奎) |
종(鍾) |
원(源) |
동(東) |
현(炫) |
재(在) |
석(錫) |
영(泳) |
근(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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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95,473명. (1985년) 116,970명. (2000년 통계청,
寧川+永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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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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